1. 기도하라
당신은 어린이의 필요와 능력을 간파하기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은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자세히 알고 계신다. 왜 당신은 어린이들에 대해 주님께 기도하지 못하는가? 당신은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즉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어떤 낱말이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예민한 감각을 갖게 해 달라고, 당신은 준비 된 심령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많은 수의 교사들이 어린이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면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곤 한다. 또 교제준비와 학과공부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였을 때에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부족함을 다소 경험하게 하곤 한다. 이와 같은 사역을 인도하시는 분은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 자신이다. 당신은 결코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어린이가 사용하는 어휘를 잘 들어두라
어린이들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 하는가?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는가? 어린이들이 죄의 짐이라든가 죄의 사슬, 안전한 방주, 또는 생수의 강에 대해 말하며 다니는가? 어린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어린이가 사용하는 일상 용어와 다른 어휘를 사용한다면,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진정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를 위해 가르친다면,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로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한 과에서 새로운 어휘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새로운 개념이나 단어 혹은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하고 쉬운 뜻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3. 성경공부 이야기를 어린이의 말로 만들어 다시 써보라
이야기의 문맥이나 의도를 준수하되,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는 이야기에도 또 다른 진리를 부언하여 설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약 이야기가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면 순종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기도가 강조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에(눅10:29~37), 예수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반석 위에 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예화를 따로따로 사용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마7:24~29). 이와 같은 두 가지 이야기와 또 많은 다른 이야기들은 구원을 가르치려는 뜻이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교훈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이야기를 어린이의 언어로 다시 쓸 때에, 성경의 말씀을 알기 쉽게 이해하고 또 발췌한 말씀의 주된 가르침을 발견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덜 오용하게 될 것이다.
어떤 교사들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구원을 강조하는 데만 급급해 한다. 물론 구원의 필요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원을 설명하는 성경의 인용구절 속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을 기초로 하는 것 역시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당신은 학과내용에 관계있는 성경구절이 어떤 것이 있는지 미리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학과내용에서 인용된 구절의 주요 진리를 실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나타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슴으로 받아들여졌다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살전2장을 보라. 특히 :3~5,13. 왜냐하면 위의 사실을 입증하는 실례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어린이가 충분히고려된 어떤 인용구절의 주된 교훈을 알고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면, 그 어린이는 성경 전체의 뜻을 잘 이해함과 동시에 잘 훈련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정말 그대로만 한다면 그 어린이는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 사역자, 어쩌면 훌륭한 목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 어린이가 진정한 성경진리 속에서 자라났다면, 그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양육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에 한가지 개념만을 가르치고, 그것과 관계된 성구나 인용구 몇 절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어쩌면 얄팍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칠때 자기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성경과 함께 시작하여 성경과 함께 쉬며, 성경과 함께 마시고, 그리고 성경을 설명한다.
이 말은 전혀 예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예화는 좋은 것이며, 사실 가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예화로 어린이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려면 인용한 성경구절의 주된 교훈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위의 모든 사항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어린이의 언어로 다시 쓰여진 이야기가 인용된 말씀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는가 살펴 보아야 한다.
4. 이야기의 구성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매 공과마다 성경에 있는 주인공, 갈등, 도입, 클라이맥스, 종결 등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이야기의 구성에 얽매인다면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a)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어린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져버릴 수도 있다.
(b) 이러한 설명은 구성된 이야기중심으로만 전개될 수 있다.
시편115편은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것은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전혀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은 스스로 어떤 부분들, 특히 4~8절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요한복음 1:1~14 말씀과 요한복음 10:1~21 말씀도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씀들은 빠져서는 안 되고 구성된 이야기로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이런 류의 인용구절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읽혀질 수 있으며, 어린이들과 여러 번 이야기할 수 있는 말씀들이다. 어린이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이와 같은 말씀의 요지와 의미를 배우는 가운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어린이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용어와 경험으로써 명확하게 설명되어져야 하는 부분은 매 인용구절마다 여러곳에 있다. 바로 이것이 어린이에게 인용구절을 거듭 설명해야 하는 또 하나의 좋은 이유이다. 또 이런 방법을 통하여 당신은 어린이들이 성경에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어린이에게 구원을 설명하려면. PP3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