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혜의 하루는 벌써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눈만 뜨면 텔레비전 채널을 가지고 동생하고 다투기 시작해서 하루 종일 난리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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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컴퓨터를 먼저 하겠다고 소리 지르며 자리싸움을 하는가 하면 엄마가 간식을 해 주면 서로 더 먹으려고 앙앙거립니다. 책이랑 인형이랑 온통 늘어놓고 과자부스러기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데도 서로 치우라고 미루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부터 골치가 지끈거렸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전도집회도 끝났고 학원도 잠깐이고 하루가 참 지루했습니다.
“지혜야, TV좀 그만 보고 방도 치우고 책 좀 읽어야지.”
“싫어요. 엄마는 나만 가지고 야단이야.”
지혜는 엄마가 잔소리한다고 토라집니다.
“지혜야, 동생하고 나가서 줄넘기 좀 해라.”
“싫어요. 내 말도 안 듣는 게 무슨 동생이야.”
지혜는 동생을 흘겨보며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흥, 언니가 뭐 저래.”
지민이도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3학년 지혜와 2학년 지민이 두 자매는 한 살 차이라서 막상막하였습니다.
엄마는 유난히 앙앙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얘들아, 우리 해리포터 영화 보러 갈까?”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야, 신난다!”
지혜와 지민이는 그제야 활짝 웃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라는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주인공 해리포터가 마법사 학교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보내준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 상자를 풀어보자 그 속에서 검은 망토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해리포터가 그 망토를 뒤집어쓰자 해리포터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 투명인간이 되는 망토였습니다. 해리포터는 투명망토를 쓰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금지구역까지 들어갔습니다. 지혜의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습니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날 밤 지혜는 일기장에다가 그 투명망토가 너무너무 부럽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상한 일이 지혜에게 벌어졌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뛰어오는데 아파트 앞에서 옷이 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이걸 잃어버렸을까? 경비실에 맡겨야지.’
하며 지혜는 옷을 주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은 해리포터 영화에서 보던 망토와 똑같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응? 이거 망토잖아? 헤헤, 혹시 해리포터가 쓰던 거 아닐까?”
지혜는 장난삼아 망토를 슬그머니 뒤집어써 보았습니다.
“지혜야, 이건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는 망토란다.”
갑자기 망토가 지혜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지혜는 깜짝 놀랐습니다.
“놀랄 것 없어. 네가 이 망토가 부럽다고 했잖아. 그래서 네게로 찾아온 거야.”
망토는 놀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정말 투명인간이 되는 망토란 말이지?”
망토의 말을 듣자 지혜의 가슴이 막 퉁탕거렸습니다.
그때 저만치서 엄마가 시장바구니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옳지. 정말 투명인간이 되는지 시험해봐야지.’
지혜는 망토를 쓴 채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엄마 앞으로 또박또박 걸어갔습니다.
‘응?’
시장바구니를 들고 오던 엄마는 지혜를 지나쳐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
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엄마는 중얼거리며 다시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야-호! 정말 투명망토다.’
지혜는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지혜야, 나와 함께 여행을 가보지 않겠니?”
망토가 말했습니다.
“여행을 가자고?”
“그래. 날아서 가는 거야.”
“날아서 간다고? 그럼 내가 날 수 있단 말이지?”
지혜는 새처럼 날 수 있다는 말에 벌써 붕붕 뜬 기분이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피터팬처럼 날아갈 수 있어. 두 손으로 나를 꼭 잡고 두 발로 힘차게 땅을 굴려봐.”
망토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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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지혜는 망토를 쓴 채 두 발을 꽝! 하고 굴렸습니다. 그러자 자혜의 몸이 정말 부웅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야! 정말 날아간다!”
지혜는 망토를 쓴 채 신나게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과 집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집들이 성냥갑만하게 보이고 멀리 푸른 바다도 보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와, 대단하다”
지혜가 감탄했습니다.
“지혜야. 세상이 참 아름답지? 여기서 내려다보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세상이야. 안타깝게도 많이 망가졌지만 말이야.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영원히 살 천국까지도 만들어 놓으셨으니까.”
“하나님은 정말 고마우신 분이야. 이렇게 날아가면 천국에도 갈 수 있어?”
지혜는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못 가.”
“아무도 안 보는데 살짝 갔다가 오면 안될까?”
지혜는 망토를 졸라보았습니다.
“지혜야, 천국은 아무 때나 가고 싶다고 가는 게 아니야. 하나님이 지혜를 오라고 해야만 지혜가 갈 수 있어.”
“그렇긴 해.”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때 이상한 모습들이 지혜의 눈에 띄었습니다.
“어? 망토야, 저기 좀 봐. 저게 뭘까?”
지혜가 맞은 편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 곳에는 새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한 무리들이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 볼까?”
망토가 그들 가까이 다가가자 새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그들은 모두 커다란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열심히 날아오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뭘 가지고 어디로 가는 거지?”
지혜는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저게 바로 천사들이야.”
“천사들이라고?”
“저 천사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사람들이 한 일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보따리에 넣어서 짊어지고 하나님께 보고하러 가는 일을 하고 있단다. 저 보따리 중에는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의 보따리도 있고,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의 보따리도 있고, 별별 보따리들이 다 있지.”
“정말? 그럼 저 천사들이 우리가 한 일을 모두 하나님께 가져다드린다는 거야?”
“그럼. 천사들은 매일매일 그 일을 하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한 일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알고 계신단다.”
‘아이 무서워.’
지혜는 갑자기 온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지민이하고 수도 없이 싸우고 엄마 말도 안 듣던 자기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게 모두 하나님께로 가 있다니.
지혜는 지난 일들이 후회되었습니다.
“아, 마침 저기 있다. 지혜야, 저 보따리 좀 보여줄까?”
망토는 한 천사가 짊어지고 가는 보따리를 가리켰습니다.
“무슨 보따리인데?”
“지혜엄마의 보따리야.”
“우리 엄마의 보따리라고?“
“그렇다니까.”
“우리 엄마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지혜는 엄마의 보따리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우리 살짝 열어볼까?”
망토는 엄마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가는 천사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쉿!”
망토는 소리 없이 보따리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천사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보따리가 아주 무거워 보였습니다.
망토는 항아리처럼 생긴 엄마의 보따리를 살짝 풀어보았습니다.
지혜는 얼른 보따리 속으로 고개를 디밀었습니다.
“이게 뭐야?”
보따리 속을 들여다보던 지혜는 실망스런 얼굴을 하였습니다.
보따리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뭐야, 엄마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
지혜는 엄마가 너무 게으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망토는 실망하는 지혜를 달랬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보따리 속에서 뭔가가 살랑살랑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혜는 정신없이 그것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한참이나 보따리 속을 들여다 본 지혜는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때? 이래도 엄마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망토가 지혜에게 속삭였습니다.
‘엄마! 미안해.’
지혜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엄마의 기도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냐고요?
엄마의 보따리 속에는 엄마의 기도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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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 달라는 기도, 지혜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게 해 달라는 기도, 지혜가 동생하고 잘 지내게 해 달라는 기도, 지혜가 교회에 잘 나가고 선생님 말씀 잘 듣게 해달라는 기도, 지혜가 친구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게 해 달라는 기도, 지혜가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등등.
엄마의 기도는 보따리가 넘칠 정도였습니다.
“지혜엄마의 기도보따리는 한 개가 아니란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기도보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있단다. 지혜를 위한 기도보따리, 지민이를 위한 기도보따리, 지혜아빠를 위한 기도보따리,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원기도보따리 등등이지. 그런데 지혜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망토가 물었습니다.
망토의 말에 지혜는 너무 창피했습니다.
보나마나 동생하고 싸우고, 짜증내고, 잘난 척하고, 엄마한테 성질내고, 동생보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고, 엄마 없을 때 컴퓨터만 하고서 안 했다고 거짓말하고 그런 것들이 잔뜩 들어있을 테니까요. 지혜는 자기 마음속에 일곱 마리의 짐승이(호랑이, 공작, 돼지, 뱀, 염소, 거북이, 개구리) 가득 들어있는 걸 보았습니다.
“지혜야.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미리미리 하늘나라를 준비해야 한단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아차! 하고 그때 준비하려면 늦는단 말이다. 알겠니? 지혜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나중에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위한 것이고, 지혜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공부도 하나님을 위해 쓰려고 하는 것이니까 뭐든지 부지런히 해야한단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기도도 열심히 해야지. 동생도 사랑하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자기가 할 일은 뭐든지 스스로 해야지.”
“알았어. 지금부터 스스로 잘 할 거야.”
“이제부터 지혜의 보따리가 제법 통통해 지겠는걸.”
망토는 가끔 지혜의 보따리를 구경해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지혜는 정말 착한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했습니다.
천사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러자 저 아래쪽에서 다른 천사의 무리들이 또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망토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망토를 꼭 잡자 망토는 땅을 향해 거꾸로 날았습니다. 망토는 하늘을 이리저리 돌며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지혜를 재미있게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속력을 내어서 땅으로 슈웅 내려올 때는 간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아슬아슬했습니다.
신나게 하늘을 달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와!”
하는 큰 함성이 들렸어요.
지혜는 천사들이 함성을 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놀라지 마. 여기는 축구장이야.”
망토는 아래쪽 축구장을 가리켰어요. 그들은 바로 축구장 위를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장을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습니다.
망토는 축구장 가까이로 사뿐히 내려갔습니다.
“잠깐만!”
지혜가 갑자기 흥분했습니다. 지혜가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지금 신나게 공을 몰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망토는 지혜가 구경할 수 있게 기다려 주었습니다.
“골인! 골인!”
지혜는 응원석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리쳐 그 선수를 응원을 하였습니다.
“슛! 골인!”
공을 몰고 가던 축구선수가 드디어 보기 좋게 공을 차 넣었습니다.
“야, 골인이다! 골인!”
지혜는 신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쳐들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순간.
지혜의 망토가 훌러덩 벗어지고 말았습니다.
“앗! 내 망토!”
지혜가 망토를 잡으려고 했지만 망토는 벌써 쏜살같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혜는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망토가 벗겨진 지혜도 축구장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으으으악!”
축구장으로 꽝 떨어지는 순간.
지혜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습니다.
“아!”
꿈이었습니다.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휴우, 큰 일 날 뻔했네.’
지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망토와 함께 하늘을 날았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아, 끔찍스럽다. 이제부터는 착한 지혜가 되어야겠어.’
지혜는 부지런히 천사에게 착한 보따리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맛있는 냄새가 지혜의 코를 솔솔 간지럽혔습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맛있는 저녁을 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 나갔습니다.
엄마는 냄비를 들여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열심히 기도보따리를 채우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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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혜는 뒤에서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엄마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눈가에 물기가 고여 있었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지혜가 다정스럽게 말했어요.
“뭐가?”
“절 위해서 기도해 주신 거요.”
“지혜야,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거니?”
엄마는 자기 팔을 꽉 꼬집어보았습니다.
“히히, 꿈은 내가 꾸었어요. 하지만 엄마에게도 앞으로 좋은 꿈 많이 꾸게 해 드릴게요.”
“어머머! 그 말 믿어도 되니?”
엄마는 갑자기 달라진 지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엄마, 밥 먹고 공부할게요. 아니, 밥 먹기 전에 방부터 깨끗이 치워야지. 참 그리고 엄마, 이제부터는 지민이하고 절대 싸우지 않을 게요.”
지혜는 엄마에게 손가락 약속을 걸고는 나풀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민이는 언니의 인형을 안고 눈물자국이 얼룩진 채로 아직도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지혜는 갑자기 그런 지민이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얌전히 덮어주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방안을 엿보던 엄마는 햇살처럼 밝은 얼굴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글쓴이- 서울중앙교회 교회학교 권오영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