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의논할 때는 과거를, 누릴 때는 현재를, 무엇인가를 할 때는 미래를 생각하라.> - A. 주베르
몇 해 전 초겨울 어느 날, 아들 녀석이 밥상머리에서 불쑥 말했다.
“아빠, 나 이번 겨울방학 때 국토순례를 해야겠어.”
나는 기겁하며 놀랐다. 그때 아들 녀석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국토순례를 하겠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나는 감언이설로 아들 녀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수능이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그러나 아들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
“국토순례뿐 아니라, 해외여행이라도 굳이 하겠다면 해야지. 그런데 어떤 친구들과 국토순례를 떠나기로 했니? 아빠가 믿고 보내도 좋을 친구들인지 궁금해서 그런다.”
아들 녀석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빠랑 둘이 국토순례를 해 보고 싶어.”
아버지인 나를 국토순례의 동반자로 생각할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다. 나는 그만 기분이 좋아져서 소리 없이 실실 웃었다.
어쨌든 나는 겨울방학을 맞은 아들과 흥겹게 국토순례를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해남 땅끝마을까지 걸었다. 그 열흘 동안 녀석과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아들 녀석이 그렇게 큰 효도 선물을 내게 선사할 줄은 몰랐다.
첫날 국토순례를 끝내고 숙소에 들었을 때였다. 아들 녀석이 등짝을 뒤로 돌리며 내게 요구했다. 어깨 좀 주물러 달라고.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아들 녀석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은근슬쩍 잔소리를 보탰다.
“아이고, 답답한 녀석아. 힘들면 아빠랑 배낭을 바꿔 메자고 말이라도 해 보지. 어깨가 결리도록 혼자 고생을 하면 어쩌니? 아빠를 봐라, 아직 까딱없잖아. 이런 걸 일컬어 군대 용어로 '짬밥 좀 드셨군요.' 하느니라.”
아들의 배낭이 내 배낭보다 무거운 게 사실이었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젊으니까. 그런데 아들 녀석이 실실 코웃음을 치며 이러는 게 아닌가.
“아빠도 참. 그렇지 않아도 배낭 좀 바꿔 메자고 말하려고 아빠를 쳐다보니까, 아빠가 나보다 더 헉헉대더라. 그런데 어떻게 바꿔 메자는 말을 해.”
순간 감동의 회오리가 나를 휘감았다. 지금도 아들과 함께한 국토순례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힘이 불끈 솟는다.
<좋은생각 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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