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이야기 1]
우리에겐 아들 둘이 있다. 큰아이는 열다섯 살, 작은아이는 열한 살. 두 녀석은 요즘 힙합 3인조 그룹 '에픽하이'에 푹 져있다. 온 집안을 울리는 음악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내놈들을 부르느라 우리 부부의 목소리는 날로 커져만 간다.
마주앉아 같은 음악을 들으며 노닥거리는 두 녀석이지만 생김새며 성격은 아주 딴판이다. 성격이나 행동거지 다른 게 어디 한두 가지 뿐이겠는가. 굳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면, 큰아이는 중학교를 다니지 않고 학교 밖을 학교 삼아 이른바 홈스쿨링을 하고 있으며, 작은아이는 학교가 너무 좋아 방과 후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하고 야구하고 농구하느라 날마다 해지는 줄 모른다.
큰아이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머! 왜 학교에 안 가요? 하루 종일 뭐하면서 지내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우리 큰아이가 하루하루 뭐하며 보내는지에 대한 짧은 답 정도다. 더한다면, 학교에서 재미나게 공부하는 대부분의 많은 아이들과 달리 학교 밖에서 나름대로 더 즐겁게 공부하며 한 학기를 보내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길을 묻다

국어 시간, 연극 단원을 공부하면 당연히 공연까지 해야 공부가 마무리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 돌아가며 교과서 희곡만 읽은 다음 아쉽게 끝나버리는 수업은 싫다, 대본도 고쳐쓰고 연습도 하고 무대를 만들어 연극까지 해보자고 끈질기게 선생님을 조르는 아이. 묵묵부답인 선생님.
궁금해서 못 참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질문해도 대답해줄 겨를 없이 바쁜 선생님을 뒤로 하고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아이. 의문을 푸느라 수업종이 울리는 것도 잊고 책을 읽는 아이. 아이 찾아다니느라 더 분주한 선생님의 꾸중.
지저분하게 책상 위에 공책이나 필통 따위가 있으면 점수를 깎는 선생님. 이동 수업 후에 돌아와보면 어느새 내 책상 위에 잡동사니를 수북이 쌓아놓은 친구 때문에 슬픈 아이. 점수가 다야?
6학년 말 초겨울 어느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재미없어. 학교 안 갈래."
초등학교 졸업 후 큰아이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멋진 교복과 큰 건물의 학교, 새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겠지만 "이제부터 딱 일 년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부하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선언을 하며 영혼의 성장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를 거쳐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를 안 하겠다더니 지난 여름엔 고입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을 했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홈스쿨러로서의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우리는 제 가고 싶은 길이 무엇인지 물었다. 넌 지금 뭘 하고 싶으냐?
드럼, 만화그리기, 연극 그리고...
이제 아이의 일과를 대충 들여다볼 차례다.
장소를 달리할 뿐이지 홈스쿨링도 학교다. 교육이 빠질 수 없다. 길잡이를 자처한 만큼 부모의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교육적 방법을 모색하고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 아이가 하고 싶은 드럼, 만화그리기, 연극과 부모가 바라는 공부를 적절하게 섞기로 합의를 했고 시간표는 아이 스스로 짰다. 아이의 일과는 의외로 빡빡했다. 어긋나는 때도 있지만 자신이 선택하고 정한 일정이기에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머리를 기르겠다 잘라라 하며 서로가 부딪히는 경우도 생기고 좌충우돌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오기도 한다. 그때는 서로에게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다. 다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보라는 신호다. 그것들은 때때로 찾아왔다가 깨우침을 준 후 다 지나간다.
아이와 아빠는 거의 날마다 아침 일찍 이 골목 저 골목 뒷산 어귀까지 한 바퀴를 돌며 하루를 시작한다.
월요일 : 홈스쿨러들과의 신나는 공부 모임에 간다. 이날을 위해 일주일 동안 본인 말대로 빡세게 공부를 한다. 요가와 명상 / 사상.철학 / 한국 현대 문학 / 체육&점심 / 인물과 역사 / 과학: 컴퓨터와 인터넷 / 산책과 낭송 / <사기>와 글쓰기가 이른 아침부터 어스름 저녁까지 이어진다.
아이의 말 = "한 주일 동안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읽어야 하고 그 내용을 통째로 요약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느라 힘들어요. 그러나 해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상쾌하고 뿌듯해요. 함께 모여서 공부한 것을 나누는 것도 정말 신나고 즐겁고요. 읽은 책 몇 권은 우리끼리 대본을 만들고 연습도 해서 연극으로 공연하는데 그것도 짱! 형 누나 동생 친구들과 함께 하는 월요일 모임을 계속하고 싶어요."

천자문 교과서
아이의 말 ="천자문 공부는 정말이지 지루해요. 앉아서 두 시간을 견디는 거죠. 그러나 글자 한자한자가 그렇게 넓고 큰 의미가 있는 건지 그 부분은 진짜 놀라워요. 깜짝 놀랐어요.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과학을 비롯한 현대 문명의 의미는 도대체 뭐지?라는 물음을 이따금 던지게 돼요. 주역으로 푸는 천자문은 그런 면도 있기는 하지만 꼼짝 않고 앉아있기가 참 힘들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