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관하여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첫걸음이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들은 무엇인가?
1-1. 자연 만물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첫번째 증거는 무엇보다 자연 만물이다. 이것은 사람이 핑계할 수 없는 증거이다.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히브리서 3: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집 한 채나 시계 한 개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만든 자가 있다. 이와 같이 이것들보다 천 만배 더 위대한 자연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 자연만물의 존재 자체가, 리고 그것의 질서와 적응성의 신비가,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천계의 질서, 동식물과 사람의 구조 등이 우연한 일이란 말인가?
1-2. 성경 말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두번째 증거는 성경 말씀이다. 이것은 충만하고 확실한 증거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전제(前提)하고 선포한다. 창세기 1:1, "태초에(맨 처음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 전부터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은 오히려 우스운 일일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힘 있는 증거이다.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직역하면, "나는 '나는 있다'이다," 혹은 "나는 '있는 자'이다"(헬라어 번역 성경).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심을 나타낸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충만한 증거들이다. 신명기 4:32-35,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3. 경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다(렘 10:10). 그는 살아계셔서 오늘날도 활동하신다. 그는 택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성도들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예레미야 29:12, 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비록 부수적인 증거로서이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 수 있다.
무신론(無神論)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많은 증거들, 즉 자연만물과 성경과 경험의 증거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실로 어리석다. 무신론은 인류에게 아무런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무신론은 그 자체가 큰 죄요 죄의 뿌리이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불경건의 큰 죄요, 그 외의 모든 윤리적 죄악들의 뿌리가 된다. 하나님 없는 자가 무슨 악을 못 행하겠는가?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2.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임을 스스로 주장한다.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 .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 . . 그리스도 예수라."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은 무엇을 통해 증거되는가?
2-1. 증거의 진실성
첫째로,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은 증거의 진실성을 통해 증거된다. 우선, 진실은 기독교에서 가장 근본적인 덕의 하나이다. 출애굽기 20:16, "거짓 증거하지 말라." 잠언 6:17, 19, 하나님은 거짓된 혀와 거짓말하는 거짓증인을 미워하신다. 요한복음 8:44, "저는(마귀는)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이시요, 마귀는 거짓말장이이다. 진실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속성이요, 거짓은 마귀와 그의 나라의 속성이다. 기독교 진리들은 바로 이 진실성 위에 세워져 있다.
더욱이, 성경의 기록자들은 사실에 대한 진실한 증거자들이었다. 특히, 기독교 복음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거에 기초해 있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주의 제자들은 거짓 증인들인가?
특히, 주의 제자들의 고난과 순교는 그들의 진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그들의 증거는 피로 인쳐진 증거이다. 어느 누가 거짓 증거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는가? 순교의 피는 모든 증거에 대한 최후적 확증이 아니겠는가?
2-2. 능력의 일들
둘째로,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은 능력의 일들을 통해 증거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많은 능력의 일들을 주셨다. 특히, 모세를 통해,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다니엘과 3친구들을 통해 그러했다.
신약 시대에도 그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많은 능력의 일들을 주셨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은 기독교 진리의 확실함을 넉넉히 증거한다.
요한복음 14:11, "만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마가복음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히브리서 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의 충만한 증거들 외에 또 다른 하나의 증거를 구하는 것은 불신앙이다.
2-3. 죄 문제의 해결
셋째로,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은 죄 문제의 해결을 통해 증거된다. 앞의 두 가지가 형식적, 이론적 증거들이라면, 이것은 내용적, 경험적 증거이다. 죄는 사람에게 근본적 문제이다. 인류의 불행은 죄 때문에 왔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에 대한 각성이 없이는 하나님의 진리들이 자신과 상관 없는 것으로, 자기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 문제를 바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경험이 있는 자에게는 기독교 진리가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3. 계시(啓示)와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히 1:1, 2). 하나님께서 자신이나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행위를 계시(啓示)라고 한다.
3-1. 일반계시
일반계시란 하나님께서 창조주와 섭리주로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자연만물과 그 현상들을 통해, 사람의 양심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그러하다.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로마서 2:15, "양심 . . .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더욱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3-2. 특별계시
특별계시란 하나님께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행위를 가리킨다.
특별계시의 방식들로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 혹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셨고, 불과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시기도 하셨으며,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나셨다. 창세기 18:1, 2,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출애굽기 19:18,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심이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요한복음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는 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꿈이나 환상 중에 말씀하시기도 하셨으며, 혹은 성령의 특별한 감동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출애굽기 19:19,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창세기 15:1,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예레미야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세째로,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셨다. 그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위하여 표적(표, sign), 기사(奇事), 능력이라는 3가지 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시대에,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 등 4시대에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
3-3. 성경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은 성경에 기록되었다. 우리는 성경책에 대해 몇 가지 점들을 말할 수 있다. 우선, 성경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매우 필요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으로서 성경은 그 특별계시들의 보존과 전달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했다. 디모데후서 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또한, 성경의 내용은 신적 권위를 가진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유일한 저장소'라는 점에서 신적 권위를 갖는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권위로 인쳐진 책이다. 이 책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진리는 명료하다. 비록 성경의 어떤 내용들은 어렵지만, 성경은 전체적으로 우리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 명료한 진리를 전달하는 말씀이다. 성경은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성경은 충족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그의 특별계시를 완성하셨다. 신약 계시는 하나님의 최종적, 절정적 계시이다. 그러므로 신약계시로 완성된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계시의 말씀이다. 우리는 신약성경 외에 하나님의 다른 어떤 계시를 구할 필요가 없고, 신약성경에 다른 어떤 계시를 첨가해서도 안된다. 히브리서 1:1,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으니." 요한계시록 22:18, 19, 성경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그 방식들은 지금은 중지되었다."
4. 성경의 신적 권위
기독교 교리는 성경에 근거하고 있고 그것의 권위는 성경의 신적 권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의 신적 권위는 어떻게 확증되는가?
4-1. 구약성경의 신적 권위
구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우선 모세와 선지자들의 역할과 권위에 의해 확증된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도구들이었고, 거기에 그들의 교훈과 글들의 신적 권위가 있었다. 민수기 12:6-8, "그[모세]와는 내[하나님]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독특한 도구'이었다(신 34:10 참조). 열왕기상 22:14, "(참 선지자 미가야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더욱이,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친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4:4, 7, 10, "기록되었으되."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할 수 없나니."
또한 사도들의 증거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일한 성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4-2.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우선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신약성경의 성격에 의해 증거된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한다(요 5:39). 구약에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은 다 성취되었다(눅 24:27, 44). 그러므로 구약 예언들이 신적 권위를 가진다면, 그 성취인 신약성경은 얼마나 더 신적 권위를 가지겠는가?
또한,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의해 증거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과 동등되신다. 그는 친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또 그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자신의 말씀의 영원불변적 권위를 증거하셨다(마 24:35).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들과 행위들, 그리고 그에 관한 말씀들을 기록하고 증거한 신약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사도들의 역할과 권위에 의해서도 확증된다. 신약의 사도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비슷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특별한 명령 즉 말씀 선포의 명령을 받았다. 마태복음 28:16-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도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특별한 약속, 즉 성령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요한복음 14:26,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특별한 표, 즉 기적을 행하는 표를 받았다.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들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 중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행전 2:43,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러므로,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를 닦는 자들이 되었고, 사도들의 글은 신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데살로니가전서 2: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형제들아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4-3.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현재적 수단임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말씀, 즉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다. 사람의 본성은 영적으로 어둡고 불신앙적이지만, 성령께서 우리 속에 활동하실 때,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믿게 되며, 그 신적 권위를 확신하게 된다.
5.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과 성경에 가르쳐진 교리들과 생활 원리들에 오류(誤謬)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이것은 성경의 원본을 두고 하는 말이요, 사본들이나 번역본들에는 약간의 부정확함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사본들과 번역본들의 차이점들이란 그리 심각하게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대조 연구를 통하여 원본의 본문을 거의 확정할 수 있다. 특히 전통적 사본들을 중시할 때에는 원본의 본문은 거의 확정된다.
20세기의 교회를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 오류를 주장하고 마침내 성경의 근본 교리들까지도 부정하는 잘못을 범했다. 성경에 오류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난제(難題)들이 가능한 설명들을 가지는 한, 오류는 아니다. 오류는 명백히 확증된 것이어야 한다. 성경에 그러한 오류는 없다. 그러면 성경 무오의 근거는 무엇인가?
5-1. 성경의 신적 권위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신적 권위 때문에 성경 무오를 믿는다. 요한복음 10:35,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성경은 폐하지 못하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요한계시록 22:18, 19, 기록된 계시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
성경은 무오하지 않으면 신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오류 있는 책에게 신적 권위를 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부분의 오류를 말한다 할지라도, 성경 유오설(有誤說)은 성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성경의 신적 권위는 여지 없이 파괴되고 만다. 사실, 이것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해온 바이다. 성경의 오류를 말하며 출발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근본적인 사실들과 교리들을 부정하였던 것이다.
5-2. 성경의 축자 영감
둘째로, 우리는 또한 성경의 완전 영감을 믿기 때문에 성경 무오를 믿는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마태복음 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갈라디아서 3:16, "자손"--한 단어가 복수명사인가 아니면 단수명사인가 하는 문제에까지 영감이 미친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다. 영감은 성경의 모든 책에, 그리고 각 책의 모든 부분들에, 미침을 성경 자체가 증거한다.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도, 심지어 단어와 글자까지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우리는 축자적(逐字的, verbal, 글자적) 영감을 믿는다. 이러한 성경의 축자 영감은 성경 유오(有誤)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5-3. 성경의 독특한 목적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경의 독특한 목적 때문에 성경 무오를 믿는다. 시편 19:7, 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성경의 완전성, 확실성, 정직성, 순결성 등 성경의 4중적 성격이 증거되었다. 디모데후서 3:15-17,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성경의 목적은 한마디로 구원에 있다. 그 구원은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와, 거룩해지고 온전케 되는 성화를 포함한다. 이것은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 의와 불의, 진리와 비진리를 나누는 숭고하고 중대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위해 신앙과 행위, 즉 교리와 윤리의 객관적 표준으로서 성경을 주셨다. 즉,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경에 주신 구원의 진리들은 확실하고 무오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이 성경에 주신 생활 원리들은 확실하고 무오할 수 밖에 없다. 만일 성경이 오류 있는 책이라면, 이 독특한 목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에 근거하여, 우리는 성경을 믿음과 행위에 대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고,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실천하며 전파하자.
6.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 즉 하나님께 돌려지는 여러가지 성질들을 통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선과 진실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이십니다.우선 그는 영이시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은 물질적 실체를 가지지 않으며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누가복음 24:39, "영은 살과 뼈가 없느니라." 디모데전서 6:16,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예배는 영적이어야 한다.
6-1. 무한, 영원, 불변하심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즉 그는 어느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시고 동시에 어느 곳에나 계시다. 시편 145:3, "하나님의 광대하심(크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예레미야 23:24,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성경에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마 6:9)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사 66:1)라는 말씀은 하늘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한 처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상은 하늘의 하늘이라도 무한자 하나님을 다 포용하지 못한다(왕상 8:27). 하나님께선 죄인의 마음에도 계셔서 감찰하시고 지옥에도 계셔서 심판하시지만, 죄악과 혼합되지는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시편 90:2,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 후까지 계신다. 사실 시간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속하며 하나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시간을 초월하신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실 수 있는 초시간적 존재이시다.
또한 그는 불변하시다. 시편 102:27, "주는 여상(如常, 동일)하시고."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존재와 속성들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의 뜻에 있어서도 불변하시다. 성경에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예를 들어, 출 32:14; 욘 3:10), 그것은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인 비유적 표현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6-2.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있으심
하나님은 지극히 지혜로우시다. 욥기 37:16, "지혜가 온전하신 자."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다. 즉 그는 전지(全知)하시다.
그는 또한 지극히 능력이 있으시다. 창세기 17:1,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 18: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물론 하나님은 자신에 반대되는 일들, 예컨대 자기 부정, 거짓말, 범죄 등을 하실 수 없다.
6-3.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심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다. 출애굽기 15:11,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신 자가 누구니이까?" 그의 거룩하심은 그가 모든 피조물로부터와 모든 도덕적 불결로부터 분리되어 계심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의로우시다. 신명기 32:4,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의(올바름)란 도덕적 기준에 일치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의 도덕적 완전성에 그 자신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고, 하나님을 거스린 모든 악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며 벌하신다(형벌적 공의). 로마서 2:4, 5,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나훔 1:2, 3,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또한 그의 긍휼, 인자, 사랑 등으로 표현된다. 출애굽기 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요한일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죽음이다.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진실하시다. 시편 86:15,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진실은 이름과 실질이, 속과 겉이, 말과 행위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7. 하나님의 삼위일체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란, 하나님께서 그 본체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구별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진리이다. 이 진리는 매우 신비하지만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 된다. 소요리문답 제6문: 하나님 안에는 몇 인격들이 계십니까? 답: 하나님 안에는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계시는데; 이 셋은 본체에 있어서 동일하시며,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7-1. 하나님의 유일성
소요리문답 제5문: 한 분 이상의 하나님들이 계십니까? 답: 오직 한 분 유일하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출애굽기 20:3,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기독교는 여러 신이나 세 신을 믿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7-2. 성자와 성령의 참된 신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은 그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증거된다. 이사야 9: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으니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요한복음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한일서 5:20,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골로새서 2: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 . .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계시록 5:13,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성부만 하나님이며 예수는 하나님이 될 수 없고 단지 그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높임을 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초대 교회로부터 있어왔다. 오늘날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성자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인 이단이다.
성령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그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증거된다. 성령을 속인 것은 곧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다(행 5:3, 4). 고린도전서 2:10, 11,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성령의 신성은 또한 그의 인격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인격적 명칭과 인격적 특성들을 가지신다. 요한복음 15:26,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성령은 중성 명사이지만, 여기에선 남성 지시대명사가 사용되었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7-3. 삼위의 상호관계
어떤 이들은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면서 한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 때는 성자로, 어떤 때는 성령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비성경적인 생각이다. 성경은 서로 구별되신 삼위께서 존재하심을 밝히 증거한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예수님의 세례시에도 삼위가 동시에 나타나심으로 이 사실을 증거하셨다(마 3:16, 17).
삼위의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요한복음 15:26,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아들의 영이라는 명칭은 성령이 아들로부터도 나오심을 보인다.
하나님의 유일성과 성자와 성령의 참된 신성을 인정하면 삼위일체의 신비를 말한 것이 된다. 이것은 신비한 진리이지만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경배에 직접 관계된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신비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제 우리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고 있고 또 평생에 그렇게 해야 한다.
8. 하나님의 예정하심
8-1.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따라, 이 세상에 되어질 모든 일들을 자유롭게 그리고 불변적으로 작정하셨다. 시편 115: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이사야 46:9-11,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 .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 . . 경영[계획]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다니엘 4: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 . .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다니엘 5:23, 벨사살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셨다. 마태복음 10:29,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로마서 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하나님의 이러한 영원전 작정(decree)은 제2 원인들의 자유나 우연함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며 확립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정론은 소위 결정론 혹은 숙명론과 다르다. 사무엘상 9:15-16 (3-6과 비교). 열왕기상 22: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잠언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의 진리는 사람의 책임을 무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회개와 믿음에 있어서 그리고 성결 생활에 있어서 책임을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 동시에 책임 있는, 성실한 인격이 되어야 한다.
특히, 작정과 죄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타락과 죄까지도 작정하셨으나, 죄의 창조자가 되시지는 않는다. 즉 사람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불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25, (엘리의 아들들에 대하여)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누가복음 22:22, (가룟 유다에 대하여)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책임성을 동시에 보인다.
8-2.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사람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은 이중적이다. 즉 그것은 선택과 유기(遺棄)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 자신의 전적인 긍휼과 은혜로 인하여 인류 가운데 어떤 이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 신명기 7: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단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6:37, 39, 4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요한복음 10:26, 27, "내 양." 사도행전 13:48,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에베소서 1:4-6,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로마서 9:10-23, (18절)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사실,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무조건적 선택을 의미한다. 인간의 회개나 믿음 등의 조건에 근거한 선택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고 사람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의 죄와 파멸 가운데 버려두셨다(유기 遺棄). 로마서 9:18,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 로마서 9:22,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선택의 사실은 버려두심을 내포한다. 버려진 자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을 당하므로, 결코 하나님께 불평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있는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선택의 증거는 믿음과 회개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하기 때문에 확실하고 안전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변덕스런 결심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변적 예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9. 창조와 섭리
건축물에 비교하면, 예정은 설계요 창조는 건축이요 섭리는 관리이다.
9-1. 창조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는 온 우주와 인류역사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성도에게 가장 기본적 사실, 기본적 신앙이다. 우주와 생명체가 우연히 시작되었으며, 특히 생명체는 낮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높고 복잡한 것들로 점차 발전되었다고 가정하는 소위 진화론은 이 기본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상으로 교회에서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창조의 시기는 '태초에'(창 1:1)이다. 성경의 문자적 연대계산에 의하면, 이 태초는 주전 약 4115년이다(창 5, 11장; 출 12:40; 왕상 6:1 등을 참조). 이 계산은 창세기 1장의 6일의 하루를 문자적 24시간의 하루로 전제한 것이다. 6일을 문자적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이유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여섯 번이나 나오는 표현이 일상적 하루에 가장 적합하고, 또한 일곱째 날의 복된 성별(창 2:2, 3)과 안식일 계명(출 20:11)이 그것을 지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우주와 인류의 오랜 연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단지 불확실한 가설들에 근거할 뿐이다. 예를 들어, 화석에 의한 연대 측정은 진화의 가설을 전제하는 순환논법이므로 타당성이 없다. 또한 방사성 탄소(C-14)에 의한 연대 측정도, 모든 생물체가 옛날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양의 방사성에 감염되어 있고 그 방사성 물질의 줄어드는 속도(반감기)도 어느 시대나 똑같다는 가설들에 근거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몇 천년 전의 생물체를 누가 측정해 보았는가?
우주와 인류의 오랜 연대설에 반대하여, 우주와 인류의 짧은 연대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도 많이 제시되고 있다. 예들 들어, 지구의 회전속도의 줄어듬, 유입된 우주진의 양, 대기 중의 산소량, 지표의 흙의 두께 등은 지구가 약 만년 미만의 나이를 가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창조의 대상은 천지와 만물(창 2:1),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행 17:24), 보이는 것 즉 물질계와 보이지 않는 것 즉 영계 혹은 천사의 세계(골 1:16) 전체이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사야 43:7, 21,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 .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9-2. 섭리
섭리란, 창조된 만물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것이다. 자녀 출생에 비교한다면, 창조는 출산이요 섭리는 양육이다. 히브리서 1: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시편 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마태복음 10:29이 증거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섭리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섭리하실 때 주로 자연법칙들을 사용하신다. 이것을 일반 섭리라고 부른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해지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잠 10:4).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진다. 사공들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행 27:31).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 즉 특별계시들을 직접 주시던 시대에 때때로 수단들 없이, 수단들을 초월하여, 수단들을 거스려 섭리하셨다. 이것을 특별 섭리 혹은 기적이라고 부른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엘리사는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했고(왕하 6:6), 다니엘의 3친구들은 풀무불에 던지웠으나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고 옷 빛도 변하지 않았고 불탄 냄새도 없었다(단 3:27). 주께서는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마 14:17-21).
섭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성경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며 동시에 구원의 역사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을 포함하는 세계적 계획이다(롬 11장).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창조된 만물과 섭리의 전 역사과정은 마침내 그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10.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예언의 성취요 성령 시대의 시작이었다. 성령의 중심적 사역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을 중생시키시고 성화시키시는 구원의 사역이다.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자들 속에 부수적으로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셔서 서로 봉사하게 하셨다. 성령의 은사들 중에는 자연적 은사들(롬 12:6-8)과 초자연적 은사들(고전 12:4-11)이 있었다. 오늘날 제기되는 질문은 사도 시대에 주셨던 방언, 예언, 병고침 등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오늘날도 존재하는가이다. 오순절파 교회는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나, 전통적 교회는 부정적이다.
10-1.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셨던 목적
성령의 초자연적 혹은 기적적 은사들을 주셨던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하고 확증하기 위해서이었다. 마가복음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히브리서 2:3,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은사]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행전 2:43; 5:12, 사도들을 통해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다.
10-2.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시대와 함께 사라졌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었다. 그것은 교회의 경험에서 확증된 것이었다. 워필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들의 교회의 특징이었고 오직 사도시대에 속했다. . . .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자들은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중지되었음을 매우 명백하게 가르쳤다." 크리소스톰(주후 4세기), "방언은 이미 그쳤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어거스틴(주후 5세기초), "방언은 유대 기독교인에게 주신 초기 표적이었고 이전 시대에 이미 사라졌다"("요한일서 설교"에서).
그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사라진 이유는 그것들의 독특한 목적과 일시적, 초보적 성격 때문이었다. 즉 그것들의 독특한 목적인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전달과 확증은 신약성경의 완성으로 성취되었다. 요한계시록 22:18, 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또한 그것들은 일시적, 초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고린도전서 13:8-11에 보면, 예언도 방언도 어느 날 폐지될 것이라는 것과, 그것들은 부분적인 것들에 관계하며, 어린 아이 때의 것들이며, 거울로 보듯이 희미한 것들이다.
10-3. 오늘날의 은사운동(신오순절주의)에 대한 평가
오늘날 은사운동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계속 혹은 회복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다시 주기 시작하셨다면 감사하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이 신구약 66권으로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주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성경은 충족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도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오늘날 사도시대의 은사들을 주신다는 증거가 없다. 오늘날 주장된 방언들은 성경의 모범대로 외국어의 특징들을 가지지 않는다. 오늘날 주장된 신유 은사들은 성경의 모범대로 한 말씀으로 각종 질병들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다. 기도의 응답과 은사는 다르다.
더욱이,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지 않고 잘못된 교회연합운동과 단합하며 심지어 천주교회까지도 포용하고 있다. 이렇게 영적 분별력이 없는 운동이 어찌 성령의 운동일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강조해야 할 것이 기적적 은사 경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은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과 거룩하고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인격과 삶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기적을 행했을지라도, 주님의 정죄를 받을 것이다(마 7:22, 23). 사랑이 없는 방언, 예언, 능력 등의 은사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전 13:1-7). 또한 성경은 말세에 거짓 기적들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마 24:24; 살후 2:9-12).
우리는 말씀과 기도 가운데 생명력 있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오늘날 성령은사운동은 성령의 운동이 아님으로 조심해야 한다.
11. 사람의 본래 상태
11-1. 몸과 영혼으로 구성됨
사람이 범죄하기 전, 본래의 상태에 대해 성경은 몇 가지 점들을 계시한다. 첫째로, 사람은 몸과 영혼의 두 실체 혹은 요소로 구성되었다(2분설). 창세기 2:7,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生靈)이라는 말은 창세기 1: 20에는 '생물'로 번역된 말로서 '산 존재,' '생명체'를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몸, 영, 혼의 세 실체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3분설). 그러나 영과 혼이 같은 실체를 가리키는 두 말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영과 혼이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사람 전체를 묘사할 때 어떤 때는 몸과 영, 어떤 때는 몸과 혼으로 묘사된다(전 12:7, "흙은 땅으로,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고"). 또 죽음을 묘사할 때, 어떤 때는 '영이 떠난다'고 하고 어떤 때는 '혼이 떠난다'고 한다(눅 23:46, 영이 떠남. 창 35:18, 혼이 떠남). 부활을 묘사할 때도, 어떤 때는 '영이 돌아온다'고 하고, 어떤 때는 '혼이 돌아온다'고 한다(눅 8:55, 영이 돌아옴. 왕상 17:21, 22, 혼이 몸으로 돌아옴). 또한 죽은 자들을 묘사할 때, '영들' 혹은 '혼들'이라고 한다(히 12:23, 의인의 영들. 계 6:9, 순교자들의 영혼들[혼들]).
3분설은 흔히 영을 고등한 것, 혼을 저급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것도 성경에 맞지 않는다. 성경에는 영이 동물에게도 사용되며(전 3:21), 혼이 하나님께도 사용되고(암 6:8), 종교적 활동을 혼에게도 돌린다(눅 1:46).
3분설이 의지하는 성경 구절들(살전 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히 4:12,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은 강조를 위해 영과 혼의 두 말을 반복한 경우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사람의 구성 요소를 통해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단순히 육신적 존재가 아니고,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4:4,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11-2.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
둘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1:26,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영적 특성들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보다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을 내포함을 증거한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에베소서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러한 의와 거룩을 '본래적 의'라고 부른다. 이 본래적 의는 사람의 범죄와 타락으로 상실되었으나 구원으로 회복된다.
성경은 타락 후에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간주하고 있다(창 9:6; 고전 11:7).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에는 사람의 그 외의 독특성도 포함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영혼의 지식, 감정, 의지, 양심의 인격성이나, 영혼의 표현기관으로서 눈, 귀, 입(말), 머리, 손, 발, 얼굴, 팔 등 몸의 기관들, 그리고 창세기 1:26, 28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연관되어 언급되는 생물 통치권 등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다.
11-3. 하나님의 명령을 받음
세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받았었다. 창세기 2:16, 17, "동산 각종 나무의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명령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그 후손에게 순종에 근거하여 생명을 약속하셨다. 이것을 '행위 언약'이라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었고 이 순종의 관계는 영속적이다. 전도서 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최초의 명령과 언약에서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이었으므로 그의 순종은 인류의 순종으로, 그의 불순종은 인류의 불순종으로 간주될 것이었다(롬 5:12, 18, 19).
사람의 본래의 상태는 매우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그 명령을 어김으로써 그 영광의 상태로부터 죄와 비참의 상태로 떨어졌다.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을 잃어버렸고, 영적인 것 대신 육체적인 것을 구하는 자로 타락하였다. 이제, 구원은 그 영광의 회복이다.
12. 죄
12-1. 죄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다. 요한일서 3:4, "죄는 불법이라." 죄와 죄 아닌 것을 판단할 표준은 바로 하나님의 법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이다. 비록 인간 관계의 죄일지라도 그러하다. 죄는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과 권위와 영광에 대한 모독이요 손상이요 침해이다. 창세기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시편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그러므로 근원적으로 죄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인간의 교만에서 나온다. 창세기 3:4, 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또한, 죄는 죄책과 부패성으로 구성된다. 죄책(罪責, guilt)이란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거나 형벌을 받아야 할 법적인 책임을 가리킨다. 부패성(corruption)이란 죄악에로 향하는 실제적 성질, 즉 죄악된 경향성 혹은 죄악성을 가리킨다.
죄는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포함한다. 출애굽기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마태복음 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12-2. 아담의 첫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이었음(원죄)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처음 명령(창 2:16, 17, 행위 언약)을 어긴 범죄는 아담 혼자만의 죄가 아니고 온 인류의 범죄이었다. 왜냐하면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언약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부패성이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인이다.
죄책의 전가(轉嫁).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이 온 인류에게 전가되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5:12-19에서 이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모든 사람)이 죽었고(15, 17절), 정죄되었고(16, 18절), 죄인되었다(19절). 죄와 정죄와 죽음의 보편성도 원죄의 사실을 확증한다. 로마서 3:11, 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요한복음 3:5, 6,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모든 사람이 죽는다. 어린 아기도 예외가 아니다.
부패성의 전달. 또한,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한 부패성도 그의 후손인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이 원죄의 부패성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의와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력해졌다. 이사야 64:6,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누더기] 옷 같으며."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의 존재하심
12-3. 죄에는 형벌이 따름
죄에는 하나님의 형벌이 따르는데, 그 형벌은 한마디로 죽음이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마서 6:23, "죄의 삯(보응)은 사망이요." 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이미 영적으로 죽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분리와 단절,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음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② 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포함한다. 창세기 3:19,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5장, '죽었더라'는 말이 반복된다. ③ 이 죽음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포함한다. 요한계시록 21:8,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부수적으로, 죄의 형벌인 죽음은 이 땅의 삶에서의 수고와 고통, 그리고 땅의 저주를 포함한다. 창세기 3: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창세기 3:17, 땅의 저주와 아담이 종신토록 수고할 것이 선언되었다.
13. 율법과 복음
13-1.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언약은 크게 셋으로 열거할 수 있다. 첫째는 행위 언약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자 아담과 맺으신 약속인데(창 2:16, 17), 거기에서 아담의 완전한 순종의 행위를 조건으로 생명을 약속하고 불순종에 대해 죽으리라는 경고를 하셨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의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행위 언약은 폐지되었다.
둘째는 구속 언약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에 관해 자기 아들과 맺으신 약속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계획에 의해 증거된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속죄 사역의 성취를 통해 피택자들의 영생이 약속된다. 이 언약은 은혜 언약의 기초이다. 에베소서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서 3:11,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6:38-40,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에게 주신 자들을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이었다.
세째는 은혜 언약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두 시대에 약간 다르게 증거되었다. 구약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의 형식으로 주어졌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의 형식으로 주어졌다.
13-2. 율법
구약 시대의 율법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도덕법이다. 그것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는데,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출 20:1-17; 마 22:37- 40). 도덕법은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것은 마치 행위 언약처럼 보인다.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도덕법의 목적은 삼중적이었다. 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준다. 로마서 7:12, 14,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영적이다. 이 목적에서 도덕법은 영속적이며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디모데전서 1:8,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 ② 그것은 사람의 죄악됨을 깨닫게 한다. 로마서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③ 그것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갈라디아서 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둘째는 재판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의 사회법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나 국가에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셋째는 의식법(儀式法)이다. 그것은 성막 제도(특히, 지성소와 속죄소), 제사, 절기 등의 법들이다. 의식법은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을 예표하였고(골 2:16, 17; 롬 3:21) 구약이 행위 언약이 아니고 은혜 언약임을 증거한다. 의식법은 오늘날엔 폐지되었다.
13-3. 복음
신약 시대에 은혜 언약의 형식은 복음(福音, 복된 소식)이다. 구약의 의식법에서 예표되었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그의 십자가와 부활로 역사상 실제로 성취되었다. 그 내용이 신약의 복음이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골로새서 2:16, 17,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구약의 율법과 비교할 때, 신약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된다.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로마서 3:21, 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이것은 율법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거나, 복음에는 율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구약의 율법과 달리, 신약의 복음은 내면적이며 영적이고, 또한 세계적이다. 고린도후서 3:6, "글자(율법조문)로 하지 아니하고 영으로 함이니." 히브리서 8:10,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마태복음 28:19,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4.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진노 아래 있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어 주셨다. 그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4-1. 참 사람과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우선, 그는 분명히 사람으로 출생하셨다. 그는 아기 때와 어린 시절을 거쳐 자라셨다. 30세쯤 되어 공적 전도활동을 시작하셨을 때 그는 자신을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라고 즐겨 부르셨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주무셨고 배고프셨고 목마르셨다. 그는 사람의 몸과 영혼, 즉 완전한 인성(人性)을 가지셨다. 그는 참으로 사람이시다.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니라." 그의 인성에 있어서, 그는 우리를 자기 형제요 친구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는 사람 이상이셨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기적들을 많이 행하셨다. 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다. 그는 각종 병자들을 고치셨다. 그는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셨고, 소경과 앉은뱅이를 고치셨다. 그는 12년 혈루병자와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들도 살리셨다. 이것들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하는 증거들의 일부이었다. 실상, 그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요 1:1) '참 하나님'이시다(요일 5:20). 그 속에는 충만한 신성이 있었다(골 2:9). 그의 신성에 있어서, 그는 우리의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시다. 우리는 그를 경배하며 찬양한다.
14-2.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신인(神人, God-man)이신 독특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요 17:5)를 스스로 포기하고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사람으로 출생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본질을 취하신 성육신(成肉身)의 신비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사람이 되신 그는 할례를 받으셨고 부모에게 순종하셨으며 성전 제사와 절기들을 지키셨다. 창조자이신 그가 스스로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다. 그는 마침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다. 그는 낮아지실 수 있는 만큼 최대로 낮아지셨다. 빌립보서 2:7,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낮추신 후에 높임을 받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는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리우셨고 지금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계신다. 거기로부터 그는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실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은 성경에 명확히 증거되었고 예언되었다. 사도행전 1:3,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도행전 1:9, 10,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마태복음 24:30,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14-3. 그리스도의 3직(三職)
예수는 '구주',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의 직분과 사역을 표시한다. 특히 그리스도는 그의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구약 시대에 이 세 직분자들에게 기름을 부었었다. 이것은 장차 오실 구주를 암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 이 3직을 가지고 일하신다.
우선 그는 선지자로 일하신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다 전달함을 가리킨다(요 12:49, 50). 그는 지상 생애 동안 가르치시는 일에 힘쓰셨고, 지금도 천상에서 그의 영 곧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이 일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선생이시다(마 23:8-10).
그는 또한 제사장으로 일하신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히 4:14) 택한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친히 자기 몸을 제물로 주셨고(마 20:28; 히 9:12; 10:12), 지금 하나님 오른 편에서 그가 사신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심을 가리킨다(롬 8:34). 그는 또한 왕으로 일하신다(마 2:2; 27:11). 그것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키심을 가리킨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지만(계 17:14), 특히 우리의 주님이시요 교회의 머리이시다. 사도행전 2:36,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22,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15. 속죄 사역
기독교 복음의 요점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소식을 포함한다(고전 15:3).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음을 전파한다." 이 소식은 속죄의 진리에 직접 관계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15-1. 속죄의 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다.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근거하였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15-2. 속죄의 의미
성경에서 속죄의 의미는 네 가지 단어로 표현된다. 첫째로, 속상(贖償, expiation)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음을 의미한다. 즉 죄책과 죄의 형벌의 보상이다. 이것은 구약의 짐승 제사들의 일차적 의미이었다.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둘째로, 구속(救贖, redemption)이다. 이 말은 값을 주고 사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주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책과 죄의 형벌로부터 건져내셨음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 .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사도행전 20:28, ". . . [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세째로, 유화(宥和, propitiation)이다. 이 말은 진노를 가라앉힌다,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힌 제물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로마서 3:25, "화목제물(유화제물, 힐라스테리온)". 요한일서 4:10, "화목제(유화제물, 힐라스모스)".
네째로, 화목(reconciliation)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과 죄인들과의 적대 관계를 회복시키셨음을 의미한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고린도후서 5:18, "저[하나님]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15-3. 속죄의 성격
첫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역사적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2천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를 이루셨다. 고린도전서 1:2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음을 전파하니."
둘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객관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속죄의 의미들은 이 사실을 증거한다.
세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대리적이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 엄격히 말해 모든 택자들을 대신한 사건이었다. 마태복음 20:28, "많은 사람의 대속물." 고린도후서 5:14, "한 사람이 모든 사람[택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네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완전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된다. 히브리서 9:12,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히브리서 10:10,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완료시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완전성과 무한한 공로성은 그의 신성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벌레 같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으나,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것이 우리의 완전한 의가 되었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이 구원이다. 성도들은 이 감격을 가지고 주를 믿고 섬기며 따라야 한다.
16. 속죄의 범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셨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해 속죄하셨는가? 감리교와 성결교의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지만, 단지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보편 속죄론'이라고 부르며, 알미니우스주의의 견해가 그러하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속죄가 제한적임을 밝히 보인다. 이것을 '제한 속죄론'이라고 부르며, 개혁교회(장로교회)의 전통적 고백이다. 제한 속죄의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6-1.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
첫째로, 구원은 긍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며, 사람의 구원의 일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일들의 제1원인자이시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하며, 그는 실제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다. 마태복음 19:26,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시편 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로마서 9:18,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리라." 만일 하나님께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려고 뜻하셨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그에게 있다. 그러나 인류 전체가 구원 받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16-2.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적임.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의 제한성을 밝히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과 달리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셨다. 또한 선택의 진리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제한성을 증거한다.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요한복음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7:9,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또한 '우리'와 '많은'이라는 표현들은 제한 속죄를 암시한다(사 53:5, 6, 8, 11; 마 20:28; 26:28 등).
보편 속죄론이 의지하는 구절들은 성경 전체의 빛 아래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에스겔 18:23,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회개를 명하시는 것은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회개치 않는 악인에 대한 그의 심판은 의롭고 공평하다.
디모데전서 2:4, 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 .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디모데전후서에서 '모든'은 세상사람 모두를 가리키지 않고 제한적 의미를 가진다(딤전 2:1; 4:15; 5:20; 딤후 1:15; 4: 16 등 참조). 본문에서도 '모든 사람'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아니고 대략적 의미의 모두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모든'은 ① 이방인과 유대인을 통틀어 모두를 가리키든지, ② 각계 각층의 사람 모두를 가리키든지, 혹은 ③ 엄밀한 의미에서 택함 받은 사람 모두를 가리킬 것이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것은 신자들에게 한 말씀이다.
16-3. 속죄는 실제로 죄의 형벌을 받는 것
세째로, 속죄는 가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로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사도행전 20:28,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 히브리서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셨다면, 죄인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심판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마침내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구원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이와 같이, 보편적 속죄는 속죄의 본질에 충돌한다.
17. 중생(重生)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구속하신 자들을 성령께서 구원하신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중생(重生)은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이 과거에 받은 은혜이다.
17-1. 중생의 의미
중생(重生, 거듭남)이란 죄로 인해 죽은 영혼이 다시 사는 것, 새 생명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며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중생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2:1, 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요한복음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중생의 새 생명은 '하나님의 씨'로서 다시 범죄할 수 없는 원리이다. 이것을 '새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영혼에 심어짐으로써, 사람의 영혼의 지배적 성향은 거룩해진다. 거듭난 자는 새 마음을 받는다. 옛 사람은 무지와 도덕적 불결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는, 비록 그에게서 옛 죄악성이 완전히 뿌리뽑힌 것은 아니지만, 여실히 하나님을 알고 의로운 삶을 지향한다. 에베소서 4:22, 23,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 .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7-2. 중생의 방법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이다. 중생은 성령의 주권적(主權的) 활동이다. 요한복음 3:5, 6, 8, "물과 성령으로(에크) 나지 아니하면 . . . 성령으로 난 것은 . . . 성령으로 난 사람." 성령께서 원인자이시다. 디도서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죽은 영혼은 스스로 살아나지 못하며, 살리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협력하지도 못한다. 중생에 있어서, 죄인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러나, 비록 유아들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성인들의 경우 중생은 주로 복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도는 죄인의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 필수적 수단이다. 야고보서 1:18,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 . .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중생의 내면적 이치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공로를 죄인에게 적용하심으로, 즉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주심으로 새 생명을 심으시는 것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었고 죄 씻음은 생명이다. 베드로전서 1:3,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에베소서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물 세례는 죄 씻음을 상징한다.
17-3. 중생의 증거
중생의 증거는 믿음이다. 요한복음 1:12, 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 . .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16, ". .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은 지정의(知情意)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결코 지식 없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고, 최소한의 복음지식이라도 가진 믿음이다. ②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③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로마서 6:17,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참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다.
중생의 증거는 또한 회개이다. 요한일서 2:29, ". . .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가복음 5:32,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회개도 지정의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① 회개는 자신의 죄인됨과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는 것이다. ② 회개는 자신의 죄악됨을 슬퍼하고 죄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③ 회개는 자신의 죄악들로부터 실제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즉 회개는 죄악되었던 옛 생활 방식을 여실하게 청산하는 것이다.
18. 칭의(稱義)
성경은 사람의 구원을 칭의(稱義)라는 말로 표현한다. 중생이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칭의는 사람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18-1. 칭의의 의미
칭의(의롭다 하심, 롬 3:24)는 법정(法廷)에서의 무죄(無罪) 선언과 같다.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에서 예수 믿는 자들에게 무죄, 즉 의롭다 하심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무엇이 아니고, 사람 밖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다.
이 무죄 선언은 신자들의 죄책, 즉 죄에 대한 법적 책임의 도말(塗抹)을 전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셨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의 죄책을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시는 것이다.
칭의는 어떤 과정 혹은 오랜 과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즉각적이며 완전한 행위이시다. 중생과 같이, 칭의는 예수 믿을 때 즉시 일어나는 단 한번의 사건이며 그것은 또한 완전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와 완전한 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5:1, 9,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 .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시제가 부정과거인데, 그것은 단회적 사실을 나타낸다.
18-2. 칭의의 방법
칭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 로마서 3:21, 22, "이제는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로마서 3:27, 28,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행위와 관계 없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결론을 내리노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그러나, 믿음 자체에 어떤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한 인간 편에서의 도구일 뿐이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과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구별하는 관점에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약 2:21, 24). 야고보가 말한 행위는 의를 얻기 위한 율법적 행위라기보다 산 믿음의 표현과 증거로서의 행위인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한 것이요,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일 뿐이다. 로마서 3:24, 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18-3. 칭의의 결과들
로마서 5장은 칭의의 몇 가지 결과들을 보인다. 첫째로, 칭의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린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느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는 특히 성경 말씀을 읽고 깨달으며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는 삶으로 표현된다.
둘째로, 칭의의 결과로 우리는 구원의 확신 중에 기뻐한다.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세째로, 칭의의 결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 로마서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죄의 형벌은 죽음이요 죄 사함과 칭의의 결과는 영생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자.
19. 성화(聖化)
19-1. 성화의 의미
성화(聖化, 거룩하여짐)는 구원의 현재적 단계로서 법적으로 이미 거룩하여졌고(고전 1:2; 히 10:10) 의롭다 하심을 입은(롬 5:1)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성도의 전인(全人) 즉 영육 전체, 지정의의 전 인격, 전 생활이 죄에 대해 점점 더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이다. 칭의는 죄책(罪責)의 제거이지만, 성화는 부패성의 제거이다. 우리의 죄책은 믿을 때 단번에 제거되지만, 우리의 부패성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비록 완전하게 제거되지는 않아도, 점진적으로 제거되며 극복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장차 영화(榮化)에 이른다.
로마서 6:1, 2,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중생과 비교할 때, 중생은 영적 출생이요, 성화는 영적 성장이다. 출생된 아기가 자라듯이, 영적으로 중생한 자는 자란다. 이 성장은 점진적이며, 야곱의 생애에서 증거되듯이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섭리적 과정을 통과한다. 베드로전서 2:1, 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며 그 내용 혹은 목표는 지식과 도덕성이다. 베드로후서 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19-2. 성화의 중요성
성화는 구원의 필수적 단계로서 매우 중요하다. 우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러므로 중생과 칭의와 함께, 성화는 설교에서 마땅히 강조되어야 할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의 하나도 성화이다. 성경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구원 즉 중생과 칭의이지만, 그것은 또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 곧 성화이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성화는 구원의 당연한 열매이다. 출생된 아기가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아기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며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중생한 성도는 당연히 거룩해져야 하고 자라야 한다. 행위의 변화가 없는 구원은 용어상 모순이며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성화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19-3. 성화의 방법
성화는 하나님의 값 없으신 은혜의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활동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성화에서, 하나님의 영께서는 성도 속에 거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 에스겔 36:27,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로마서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로마서 8:13, 14,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16, 22-23,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 . .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그러므로 성화에 있어서 선행은 비(非)공로적이다.
그러나 성화는 사람편에서의 성실한 노력을 요구한다. 중생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던 죄인이 성화의 과정에서는 자발적, 자원적, 능동적이며 협력적이다. 빌립보서 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데살로니가전서 4:1, "더욱 많이 힘쓰라." 베드로후서 1:5, 10, "너희가 더욱 힘[쓰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화의 수단들을 주셨다. 그것들은 성경 말씀, 성례, 기도, 및 섭리적 지도 등이다.
20. 성도의 견인(堅忍)
20-1. 성도의 견인의 의미
성도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끝까지 견딤)이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은 은혜의 상태 안에서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른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1,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고 그의 영으로 효력 있게 부르시며 거룩케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떨어져 버릴 수 없고; 그 안에서 확실히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
[참고]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불리우는 다섯 가지 교리들은 다음과 같다: (1)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 (2)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3)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 (4) 성령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 (5) 성도의 견인(堅忍).
어떤 이들은 이 교리들을 반대하여, 사람의 전적 부패성과 무능력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조건적 선택 혹은 예지 예정(豫知豫定), 그리스도의 보편적 속죄, 성령의 은혜에 대한 저항 가능성, 성도의 도중 실패 가능성 등을 주장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알미니우스주의라고 부른다.
20-2. 성도의 견인의 성경적 증거
성도의 견인 교리의 증거들은 무엇인가? 우선, 성경에 명백히 가르친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0:27, 28,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 . .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로마서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이런 명백한 구절들 뿐만 아니라, 성도의 견인 교리를 지원하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의 불변성이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말(에독사세)은 부정과거시제로서 미래의 확실한 사건을 나타낸다. 예정된 자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영화롭게 된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의 완전성이다.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셋째는, 성령의 인치심이다. 에베소서 1:13, 14, "그를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는 그 얻으신 것의 구속의 때까지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심'은 보증이며 보장이다. 이렇게 보증된 자들은 중도(中途)에 실패할 수 없다.
20-3.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반론들의 반박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여러 가지 반론들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반론들은 다 이 교리에 대한 오해로서 다음과 같이 반박된다.
(1)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는 등의 성화 계속의 권면에 반대된다는 반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견인과 구원의 완성을 위해 사람의 자발적 행위를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2) 나태와 방종에로 인도한다는 반론에 대하여: 성도의 견인은 우리 편의 근면과 성실한 노력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성도 견인의 확신은 성도에게 성화를 위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3)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1)는 등의 배교(背敎)의 경고에 반대된다는 반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구원 완성을 위해 경고를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배교의 경고는 배교의 가능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4)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딤전 1:19, 20) 같은 배교(背敎)의 실례들에 반대된다는 반론에 대하여: 배교자들이 한 때 교회 안에 있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들이 참으로 중생하고 구원 얻은 자들이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하라(요 6:64; 13: 10, 11).
21. 교회의 본질, 속성, 표지
21-1. 교회의 본질
교회는 단순히 예배당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고, '성도들의 교통'이라고 정의된다. '교통'이라는 말은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성도들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을 가리키며, 참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연합하여 교제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에베소서 1:3-14이 증거하는 대로, 성도들이란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고, 복음을 믿어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입교 문답 혹은 세례 문답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교회는 무형적(無形的)이며 동시에 유형적(有形的)이다. 참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총체로서의 교회의 실상이나 전체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무형적 교회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현실적 교제는 볼 수 있다. 또한, 교회의 외적 조직에 대하여, 천주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조직을 본질적 요소로 보는 반면, 개혁교회는 참된 교회를 그 무형성에서 찾는다. 교회에서 외적 조직이 필요하다고 인정되지만, 그것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부수적일 뿐이라고 본다.
교회는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 구약성경에 '총회,' '회중'이라는 히브리어가 교회라는 그리스어에 해당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 이후 온 인류의 유일한 구주요 중보자이시다(딤전 2:5; 요 14:6; 계 13:8). 즉 모든 시대에 구원의 원리는 동일하다. 덧붙여, 신약교회의 이방인들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과 함께 동료 시민과 지체가 되었다(엡 2:19; 3:6). 즉 신분과 특권에 있어서 구약성도와 신약성도는 동일하다.
21-2. 교회의 속성
우선, 교회는 하나이다. 에베소서 4:4, "몸이 하나이요." 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다. 고린도전서 12:13,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교회의 일체성(一體性)은 또한 교리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공동적 진리 위에서 하나이다. 요한복음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에베소서 4:4-6, 몸의 하나임은 성령, 소망, 주, 믿음, 세례, 하나님의 하나임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교회의 일체성은 유형적(有形的)으로도 표현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0,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에베소서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사도행전 2:44, 46 참조.
둘째로, 교회는 거룩하다. 주께서는 법적으로 이미 모든 성도들을 거룩하게 만드셨다. 히브리서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완료형)."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에베소서 5:26, 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이 거룩을 지켜야 한다.
셋째로, 교회는 보편적, 세계적이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21-3. 참 교회의 표
첫째로, 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한다. 순수한 말씀의 바른 전파는 성도들의 바른 신앙 고백의 기초요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전파가 없는 곳에는, 바른 신앙 고백도, 성도도, 그러므로 교회도, 있을 수 없다.
둘째로, 참 교회는 성례를 바르게 집행한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특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진리의 가시적(可視的) 표현이다.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바르게 집행된 성례를 통해 그 교회의 바른 신앙고백이 표현되고 증거된다.
셋째로, 참 교회는 성도들에게 훈련과 권징을 성실히 실행한다. 성도들의 신앙고백은 실생활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교회는 위선적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따라서 참 교회는 자신의 오류들을 성실히 고친다.
22. 교회의 권세, 임무, 조직
22-1. 교회의 권위
주께서 교회에 주신 권위는 첫째로 교훈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보수하는 권위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디모데전서 3:15, "진리의 기둥과 터." 교회는 이 권위를 사용하여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며 신학을 정립한다. 마태복음 16:19,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둘째는 치리(治理)권이다. 이것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거룩함을 보존하는 권위이다. 교회는 이 권위를 사용하여 교회의 규칙들을 제정하며 권징을 행사한다. 마태복음 18:18,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권징의 목적은 범죄자의 회개, 악의 전염의 방지, 주의 명예의 옹호, 및 하나님의 진노의 방지를 위해이며, 권징의 단계는 권계(勸戒), 수찬(受餐) 정지, 제명 출교이다.
셋째는 봉사권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가난한 자와 병자를 돕고 위로하는 권위이다. 사도행전 6:1, "매일 구제에."
22-2. 임무
교회의 첫번째 임무는 예배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임무로서 기본적이다. 성도가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요 4:24; 엡 1:6, 12, 14).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믿는 믿음으로 드려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또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한다. 신약의 예배는 어떤 장소, 시간,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다. 예배의 순서는 대개 찬송, 기도, 말씀, 헌금 등이다(고전 14:26). 신약예배는 구약제사의 대치물이 아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제사이다(롬 12:1).
교회의 두번째 임무는 영적 건립이다. 그것은 자체에 대한 임무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에베소서 4:11-13, "그가 목사와 교사를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를 위해 교회는 말씀과 기도, 교제와 봉사와 구제에 힘쓴다.
교회의 세번째의 임무는 전도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가지는 임무이다. 이는 주께서 교회에 주신 특수 임무 곧 사명(mission, 선교)이다. 마태복음 28:19,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실상, 이것은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며 성자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이다(요 3:16; 마 20:28). 교회의 일은 이 일을 위해 집중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사람들을 모집, 훈련, 파송, 후원해야 한다.
사회 정치 활동이 교회의 임무인가 하는 문제가 근래에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지만, 단체로서의 교회의 임무는 아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회 정치 활동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초대 교회의 사명도 사회 정치 활동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전도의 명령을 받았고 그 일에 힘썼다.
22-3. 교회의 조직
역사상 3종류의 정치 형태들이 있었다. 감독정치는 감독들에 의한 정치로서 교인들은 교회 정치에 관여치 않는다. 회중정치는 교인들에 의한 정치로서 목사는 교회의 한 회원에 불과하다. 장로정치는 교인들이 세운 대표자들에 의한 정치로서 목사와 교인들의 권한이 둘 다 존중된다.
교회의 성경적 직분들에는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다. 목사는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이다.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를 돕는다. 장로는 교인들의 대표자이다. 장로는 지위상 목사와 동등하며 기능상 목사를 돕는다. 집사는 교회의 살림살이, 구제, 병자 방문을 위한 직분이다(행 6:1-6).
오늘날 여자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일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은 창조의 질서와 범죄의 징벌 때문에 그 일을 금하였다(딤전 2:11-14). 교회의 직분은 단순히 명예직이 아니고 전적으로 봉사직이다(마 20:26, 27). 교회의 직원들의 자격요건은 인격적 성숙이다(딤전 3장).장로교회에서 공동의회는 지교회의 무흠 세례교인들의 회의로서 기본적 권한을 가진다. 당회는 지교회의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회의로서 지교회의 치리회이다. 노회는 한 지역 안의 목사들과 총대 장로들로 구성된다. 총회는 각 노회의 총대 목사들과 총대 장로들로 구성된다.
23. 현대교회문제
23-1. 자유주의 신학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적 자유주의화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아주 무서운 이단 사상인데, 이러한 이단 사상이 오늘날 개신교(Protestant)의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한 기본적 특징은 성경의 신빙성과 그것의 신적 권위와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하는 데 있다. 자유주의는 또한 하나님의 진노하심, 즉 그의 형벌적 공의의 속성을 부정하며,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그의 형벌적 대속, 그의 부활, 그의 재림 등을 부정한다.
이러한 사상은 명백히 이단이다. 예수께서는 성경을 폐할 수 없다고 친히 단언하셨다(요 10:35). 또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은 홍수심판 때부터 증거된 성경의 기본 교리이다(히 6:2).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사상은 적그리스도의 사상이며(요일 4:2, 3), 초자연적 사건들의 부정은 사두개인들의 오류이었다(마 22:29). 또한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을 부정함은 복음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요(롬 3:24, 25), 그의 부활과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적 신앙의 핵심(롬 10:9)과 근본적 소망의 내용(계 1:7; 22:20)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경적 기독교는 참된, 불변적 교리들 위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바른 교리들을 보수해야 하고 이러한 이단들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13, 14, "너는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안에 용납될 수 없는 이단 사상이다.
23-2. 교회 연합 운동
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교회 연합 운동인데, 이것은 세계의 모든 기독교회들을 재연합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연합 운동에서의 연합의 개념은 너무 넓고 비성경적이다. 이 운동은 교회가 하나라는 이름 아래 기독교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신학 사상들을 비판 없이 용납하고 있다. 개신교의 대교단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그것을 배제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고 도리어 그 지도자들의 사상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 연합 운동은 천주교에 대해서도 매우 우호적이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그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이단성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더욱이, 교회 연합 운동의 중심 기구인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지도자들 중에는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며 다른 종교들 속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조차 있다. 세계 교회 협의회의 타종교와 이념과의 대화 분과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Wesley Ariarajah)가 그 예다.
바른 교리는 기독교에 본질적이기 때문에, 자유주의 이단과 적그리스도적 천주교회와 심지어 이방 종교 등의 포용은 기독교회의 자살 행위이다. 또한 교회의 하나됨은 교리적 성격을 가진다. 교회는 참된 진리 위에서 하나인 것이다. 더욱이, 주께서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게 바른 교리를 보수하고 이단을 배격하라고 분명히 명령하셨기 때문에(딤후 1:13, 14; 롬 16:17; 유3), 이런 류의 비성경적 연합 운동은 주께 대한 명백한 불순종이다. 고린도후서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 .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분리하고]."
23-3.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
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문제는 신복음주의이다. 그것은 자유주의 교회들로부터의 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 교단들 안에 머물러 있다. 다른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과 단체들은 자유주의 교회들과의 연합 집회나 활동을 찬성한다.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예는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이다. 그는 1950년대 이후 그의 전도 활동의 방침을 변경하여 각 지역의 교회 전체의 후원 아래서만 전도 집회를 열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단들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사적 대교단들이 자유주의화 된 상황이므로 대교단들과의 연합 활동들은 자유주의적 이단을 용납하고 그들과 타협하는 일이 된다. 사실상, 신복음주의의 입장은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적 상황에서 고립되기를 싫어하고 좁은 길 걷기를 싫어하는 인간적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이요 불성실이요 불순종이다.
24. 성경적 분리
성경은 성도의 사랑의 교제를 가르친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적 교제의 단절, 곧 분리(分離)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참 사랑은 모든 불의를 배제해야 한다.
24-1. 분리의 대상들
성경은 우리가 교제를 단절해야 할, 즉 분리해야 할 네 가지 대상들을 말한다. 첫째는 불신자들이다. 고린도후서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둘째는 이단자들이다. 교회역사상 로마 카톨릭 교회와 19세기에 나타난 여러 이단종파들과, 특히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다. 참된 성도는 그런 데 빠진 자들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없다. 그들은 우리의 전도의 대상일 뿐이다. 로마서 16:17, 18,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요이 7-11,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셋째는 회개치 않는 범죄자들이다. 고린도전서 5:11-13,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 . .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넷째는 고의적 불순종자들이다. 이 부류는 오늘날 신복음주의자들에게 해당한다.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치 않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 .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않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24-2. 분리의 이유들
교제를 끊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교회의 본질 때문이다. 바른 사상과 신앙 고백,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함은 참 교회에 본질적 요소이다. 둘째로, 교회의 순결성 때문에도 그렇다. 교회는 거룩하며, 그 거룩을 실제적으로도 지켜야 한다. 이 거룩함의 보존은 교리와 윤리의 영역에 있어서 다 그러해야 한다. 적어도 참 교회는 교리적, 도덕적 오류들을 고의적으로 포용해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베드로후서 2:1, "멸망케 할 이단."
셋째로, 악의 전염성 때문에도 그러하다. 고린도전서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디모데후서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24-3. 분리의 방법들
교제의 단절은 일차적으로 교회적 교제의 단절을 말한다. 교회 안에 분리의 대상이 있으면 권계(勸戒), 수찬(受餐)정지, 제명출교의 순서로 처리한다. 고린도전서 5:13, 사귀지 말고 함께 먹지 말고 내어 쫓으라.
교회가 배교(背敎) 혹은 자유화 되었을 때는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 교회가 배교되었다고 판단되는 시기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유주의를 용납하고 그것을 고칠 의향을 가지지 않을 때이다.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고린도후서 6:17, "나와서 따로 있으라." 뿐만 아니라, 성경적, 보수적 교회들은 자유주의화된 배교적 교회들과 연합집회나 활동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교제의 단절은, 또한, 개인적 교제의 단절 혹은 조심을 내포한다. 구약 시대 유다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은 악한 이스라엘왕 아합과 교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고, 그 자손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덧붙여, 우리는 교제의 단절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선 성급하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 또한 겸손과 온유를 간직해야 한다. 영적 교만과 미움은 잘못된 교제보다 작지 않은 악이다.
25. 은혜의 수단들
하나님은 죄인의 구원과 영적 성장(성화)을 위해 몇 가지 은혜의 수단들을 주셨는데, 그것들은 성경 말씀, 성례들, 기도이다.
25-1. 성경 말씀
은혜의 첫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단은 성경 말씀이다. 시편 19:7, 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디모데후서 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설교와 성경 강해는 은혜의 주요 수단이다.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전서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우리는 또한 개인적 성경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시편 1:2, 3,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성경읽기를 힘쓰자. 욥기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성도들이 1년에 1회 이상씩 성경을 통독(通讀)할 수 있도록 힘쓰자.
출저:Old-time Faith
기독교 교리 개요(은혜의 수단)
25. 은혜의 수단들
하나님은 죄인의 구원과 영적 성장(성화)을 위해 몇 가지 은혜의 수단들을 주셨는데, 그것들은 성경 말씀, 성례들, 기도이다.
25-1. 성경 말씀
은혜의 첫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단은 성경 말씀이다. 시편 19:7, 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디모데후서 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설교와 성경 강해는 은혜의 주요 수단이다.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전서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는 또한 개인적 성경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시편 1:2, 3,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성경읽기를 힘쓰자. 욥기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성도들이 1년에 1회 이상씩 성경을 통독(通讀)할 수 있도록 힘쓰자.
25-2. 성례들
신약의 성례들은 주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의식들을 가리키는데, 세례와 성찬 둘뿐
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의 유형적(有形的) 표현이다.
세례는 죄 씻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표시하고 확증한다.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안으로, 에이스] 세례를 주라." 사도행전 2:38, "너희가 회개
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에베소서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케 하사." 로마서 6:3,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속죄의 은혜를 표시하고 확증한다.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위하여 상한]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성찬에 실제로 그러나 영적으로 함께 하신다.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실제로 변한다는 생각(천주교회의 화체설<化體說>)이나, 떡과 포도즙 안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실제로 함께 있다는 생각(루터교회의 공재설<共在說>)이나, 떡과 포도즙은 단순히 상징에 불과하다는 생각(즈윙글리의 기념설) 등은 성찬에 대한 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1:27,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5-3. 기도
기도는 그 성격상 명백히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다.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기도의 요소들은 감사와 찬양, 죄의 고백, 간구이다. 기도의 모범적 내용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마 6:9-15).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기도하기를 힘쓰자. 다니엘 6:10,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기도 제목 카드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26. 세례의 방식과 대상
물을 뿌리는 세례 방식과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침례교회는 정당한가?
26-1. 세례의 방식
침례교회는 물 속에 담그는 침수(浸水)만 세례의 정당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세례준다'는 원어가 물에 담그는 것을 의미하며, 물에 담그는 것만이 죽음과 부활의 상징을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침례교회의 그러한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세례준다는 원어(밥티죠, 밥토)는 '물에 담근다'는 뜻 외에 '깨끗게 한다'는 뜻도 가진다. 마가복음 7:4,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둘째로, 세례의 기본적 의미는 죄 씻음이며, 그것은 물을 뿌림으로도 충분히 표현된다. 에베소서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에스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셋째로, 성경의 세례 명령과 예들은 세례의 방식을 명확히 지시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3:16,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사도행전 8:38, 39,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넷째로, 침수의 방식은 복음의 보편적 성격에 적합하지 않다. 심각한 병자들, 사막 지방, 추운 지방 등의 경우들에서 침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물을 뿌리거나 물을 붓거나 물 속에 담그는 세례 방식들이 다 정당성을 가진다고 본다. 세례에서 물이라는 상징물이 중요하지, 물의 양(量)은 중요하지 않다.
26-2. 세례의 대상
침례교회는 또한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 그 이유로서 그들은 유아가 신앙을 고백할 수 없고, 성경에 유아 세례에 대한 명확한 명령이나 예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아 세례는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보편적 전통이요 성경적 근거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첫째로,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은혜 언약은 동일하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유아들이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에 참여하였고 (창 17:12) 그 이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언약에서 제외시킨 적이 없으므로, 신약 시대에도 유아들이 언약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구약 시대에는 유아들이 언약의 백성이었으나, 구약보다 더 풍성한 은혜의 시대인 신약 아래서는 그들이 이방인들이란 말인가? 로마서 4:16,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의 유아들을 천국 백성으로 여기셨다. 마가복음 10:13-16,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셋째로, 바울 사도는 신자의 자녀들을 거룩하다고 간주했다. 고린도전서 7:14, ". . .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넷째로, 바울 사도는 신자의 자녀를 교회의 회원으로 여기며 교훈했다.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다섯째로, 신약성경에는 가정 구원의 약속들이 있다. 사도행전 16: 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여섯째로, 신약성경에는 가정 세례의 예들이 있다. 사도행전 16:15, (루디아)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사도행전 16:33, (빌립보 간수) ". . .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일곱째로, 유아 세례는 교회의 전통적, 보편적 의식이다. 어거스틴, "유아 세례의 교리가 교회 회의들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으나 전세계 교회가 일반적으로 실행한다는 사실을 볼 때, 그 교리는 아마도 사도들의 권위에 의해 확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세례의 정당한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더불어 부모의 책임을 강조해두어야 한다. 부모는 세례 받은 유아들을 말씀과 기도로, 그리고 모범을 보임으로 잘 양육하여야 한다.
27. 사람의 죽은 후 상태
27-1. 몸의 죽음
몸의 죽음이란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 즉 몸과 영혼의 분리이다. 영혼은 몸에 있는 생명 원리이다. 영혼이 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고, 영혼이 떠나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몸의 죽음은 창조 질서에 속한 자연적 현상이 아니고, 사람의 죄 때문에 온 현상이다. 창세기 2:17,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5:5, "죽었더라"(창 5장에 반복됨). 로마서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몸의 죽음으로 사람의 영원한 상태는 확정된다. 누가복음 16:26,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이 죽는 이유는 아직 몸의 부활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다. 만일 성도가 살아서 주의 재림을 맞으면 그는 죽지 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몸의 죽음은 하나님의 훈련 과정의 절정이다. 그러나 성도에게 죽음은 두렵고 슬픈 사건이 아니고, 소망과 기대가 있는 사건이며 복되고 영광스런 사건이다.
27-2. 성도의 영혼
몸의 죽음 후 영혼은 어디로 가며 어떤 상태에 있는가? 첫째로, 성도의 영혼은 즉시 천국에 영접되어 안식을 누린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의인들의 영혼들은 죽을 때 온전히 거룩해져서 지극히 높은 하늘로 영접되어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몸의 온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잠언 14:32,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누가복음 16:22, 25,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 . . .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누가복음 23:4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브라함의 품이나 낙원은 천국을 가리킨다고 본다(고후 12:2, 4 참조). 고린도후서 5:8,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빌립보서 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브리서 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 . .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7-3. 악인의 영혼
둘째로, 악인의 영혼은 즉시 지옥에 던지워 거기서 고통을 당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악인들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워서 그곳에서 고초와 전적인 흑암 가운데 지내며 큰 날의 심판까지 갇히어 있다." 악인은 죽은 후 그 영혼이 없어지거나 잠자거나 귀신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다.
시편 9:17,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음부'(陰府, 스올)는 성경에서 무덤 또는 지옥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악인의 미래 형벌의 처소를 가리킬 수 있는 단어는 이것뿐이다. 잠언 5:5, "음녀의 걸음은 음부[지옥]로 나아가나니." 잠언 23:14, "아이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 누가복음 16:22-24, 28,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 . .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 .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베드로후서 2:9, "주께서 . . .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유다서 6, "자기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몸의 죽음은 사람의 영원한 상태를 고정시킨다.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지만, 악인은 죽은 후 그 영혼이 지옥에 던지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 이 두 장소 외에 다른 아무 곳도 가르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성경은 몸과 나누인 영혼들을 위해 이 두 장소 외에는 다른 아무 곳도 인정치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죽기 전에 영원한 처소를 잘 준비해야 한다.
2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복된 소망이다. 사도신경,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28-1. 재림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첫째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 . .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행전 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계시록 1:7,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은밀한 재림'이란 없다. 주의 재림은 둘째로 영광스러운 사건이다. 마태복음 24:30,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데살로니가후서 1:7,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재림은 셋째로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마태복음 24:43, "도적같이"(살전 5:2; 계 16:15).
28-2. 재림의 확실성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소망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셨다. 마태복음 24:30,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6:64, "이후에 인자가 . . .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사도들도 그것을 명백히 가르쳤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좇아 강림하시리니." 데살로니가후서 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베드로후서 3:10,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 . . 그러하리라. 아멘."
28-3. 재림의 징조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막 13:32), 재림 직전에 징조들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미혹과 배교(背敎)가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4,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11). 데살로니가후서 2:3,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오늘날 이단들 가운데는 천주교회를 비롯하여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몰몬교, 통일교 등 뿐만 아니라, 특히 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를 부패시킨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있다.
둘째로, 전쟁, 기근, 질병, 지진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들]과 [온역들과] 지진[들]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계시록에도 유프라데스강 주위에서의 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이 예언되어 있다(8, 9, 16장). 20세기의 1, 2차 세계대전은 이 징조의 성취이다. 또 20세기에 들어와 지구 곳곳에 큰 기근들이 있었고 지금도 매일 7억 5천만명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대지진들도 더욱 빈번해졌다. 20세기에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은 24개 이상이 되며, 그 중 2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은 14개나 된다.
또 하나의 재림 징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로 인한 교회의 핍박이다. 적그리스도는 정치적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데살로니가후서 2:3, 4, "(주의 재림은)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현대의 공산 독재자들은 이 징조의 성취라고 보여진다. 이런 징조에 더하여, 세계 복음화와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이 있을 것이다(마 24:14; 롬 11:25, 26).
오늘 우리는 이러한 징조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주의 재림은 실로 가까와 오고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 주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태복음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깨어 있는다는 것은 참된 믿음과 거룩하고 사랑하는 삶을 힘쓰는 것을 말한다(살전 3:12, 13).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9. 휴거(携去)와 천년왕국
29-1. 휴거(携去)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주께서 . . .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어떤 이들은 승리한 신자들만 들리움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근거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6)는 말씀을 든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라"(고전 15:51)고 말씀하여 신자들 가운데 두 부류가 없음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신자들이 대환난 기간 중 처음 3년 반 후에 들리움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근거로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의 승천을 든다. 그러나 상징적 사건의 주관적 해석은 근거가 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신자들이 대환난 전에 들리움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의 은밀한 재림과 지상의 드러난 재림으로 나누며 그 사이에 대환난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휴거를 대환난 전에 두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은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으므로, 만일 그가 대환난 후에 오신다면 대환난 전에는 오실 수 없기 때문에 대환난 전에 오셔야 한다. (2) 대환난은 하나님의 진노의 때이므로(계 8:13) 신자는 거기에 참여치 않을 것이다(롬 5:9). (3) 계시록의 대환난 기간에 관한 예언에는 '교회'라는 말이 없고 '성도'라는 말만 나오는데, 이것은 교회는 들리움 받았고 이스라엘만이 환난을 당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1) 예수님은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갑작스레 오시는 것뿐이며, 그는 대환난 후에 오실 것이다. 그의 재림의 돌연성을 묘사하는 '도적같이'라는 말은 대환난 후의 재림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말이었다(마 24:21, 29, 42-23). (2)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은 악인들에 대한 표현일 뿐이며, 또한 성도들에게는 환난 중에서도 피할 길이 있음을 암시한다(계 9:4; 16:2). (3) 신약 시대에는 교회와 성도의 구별이 없다(롬 1:7). (4) 예수님의 재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며, 재림의 두 단계의 주장은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
휴거란 대환난이 지난 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들리움 받아 주를 영접하는 사건이다. 휴거는 은밀한 사건이 아니고 천사의 나팔소리를 동반한 시끄러운 사건이며, 그 때는 대환난 후 영광스런 주의 재림의 때(마 24:29, 30) 외의 다른 어떤 때일 수 없다.
29-2. 천년왕국
요한계시록 20:1-6에는, 천년 간의 사탄의 결박, 성도들의 부활과 천년 간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함에 대해 상징적 어투로 증거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교회 시대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 그것은 신약성경 다른 곳에 천년왕국에 대한 언급이나 암시가 없고, 성경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심판이 동시에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단 12:2; 요 5:29; 마 13장, 25장; 살전; 살후; 벧후 3장).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종말 예언에 독특한 권위를 가지며(계 1:19; 22:18, 19), 본문에 묘사된 사탄의 결박은 교회시대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천년왕국을 교회 시대 말기의 기독교 황금 시대를 상징한다고 본다. 그것은 위의 근거에 덧붙여 계시록 본문에 좀더 충실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말세 징조들과 또 1, 2차 세계대전 후의 시대적 상황에 잘 조화되지 않는다. 또한 대환난과 요한계시록 20장의 앞뒤 사건들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어떤 이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유대인의 천년왕국이라고 본다. 이사야, 에스겔 등의 예언대로 그 때 예루살렘 성전 재건, 제사와 절기의 회복 등이 있으리라고 한다. 이 견해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구약 예언들과 요한계시록 19, 20장의 내용들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다. 그러나, 구약 예언들에 대한 일방적인 문자적 해석은 정당치 못하며(갈 3:29),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된(히 8:13) 제사, 절기 등 구약 의식법들의 회복의 주장도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그것이 요한계시록 문맥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심판이 동시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여러 성경구절들은 이 견해의 어려운 점이다.
30. 마지막 심판
30-1. 의인들과 악인들의 부활
마지막 심판을 위하여 의인들과 악인들은 다 부활할 것이다. 다니엘 12:2, "자는 자 중 많이 깨어 영생을 얻겠고 어떤 이들은 수욕을 입을 것이며." 요한복음 5:28,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요한계시록 20:11-15,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이시다(행 10:42; 딤후 4:1; 벧전 4:5).
30-2. 마지막 심판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죄를 벌하신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과 롯 시대의 소돔, 고모라 성의 심판은 그 대표적 예들이었다(창 7, 19장).
성경은 세상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을 밝히 가르친다. 그 날 그리스도께서는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마 3:12). 하나님께서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행 17:31). 장차 오는 심판이 있다(행 24:25). 하나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날이 있다(롬 2:5, 16). 베드로후서 3:7,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 유다서 6, "큰 날의 심판까지."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롬 14:10).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과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아야 한다(히 6:2).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심판 때 심판자이시다.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사도행전 10:42, ". . .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고린도후서 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심판을 받으리라."
각 사람은 자기의 행위와 예수님께 대한 태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2,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복음 3:36,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0-3.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의 결과 천국과 지옥의 영원한 처소로 나뉜다. 의인들은 천국의 영광을 영원히 누릴 것이다. 로마서 8:18,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고린도후서 4:17, 18,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 베드로전서 5:10,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 베드로후서 1:11,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베드로후서 3:11,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은 영광스럽고 눈물, 죽음, 병, 저주, 죄가 없고 생명과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계 21:1-22:5).
그러나 다른 한편, 악인들은 지옥불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10:28,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 마태복음 13: 41, 42,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태복음 25:41, 46,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 "영벌." 마가복음 9:43, 48, 49, "지옥 꺼지지 않는 불 . .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마다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의 교리를 위해 책임 있는 분이시다(쉐드).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지옥에서의 고통은 영원한 불의 고통으로 묘사된다. 마태복음 3:12, "꺼지지 않는 불." 마태복음 25:41, 46, "영영한 불 . . . 영벌." 마가복음 9:43, 48, 49, "지옥 꺼지지 않는 불 . .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거룩과 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준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이처럼 무섭고 철저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복과 영광은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의 복음 진리를 굳게 믿고 성도답게 살면서 이 복음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복습 문제들
1.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 기독교 진리의 확실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특별 계시의 방식들은 무엇인가?
4. 구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5.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6.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란 무엇인가?
7.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믿는 까닭은 무엇인가?
8. 하나님의 10가지 속성들을 열거하라.
9. 삼위일체(三位一體)란 무엇인가?
10.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어떻게 증거되는가?
11.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자유나 우연함의 관계는 무엇인가?
12. 예정의 두 요소는 무엇인가?
13. 섭리(攝理)란 무엇인가?
14.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셨던 목적은 무엇인가?
15.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언제 사라졌는가?
16.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왜 사라졌는가?
17. 오늘날의 은사 운동에 대해 평가하라.
18.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 무엇인가?
19. 사람의 구성 요소에 관하여, 3분설은 왜 잘못인가?
20. 죄가 무엇인가?
21. 죄의 2가지 요소가 무엇인가?
22. 마음의 상태도 죄가 된다는 성경구절을 들라.
23. 원죄(原罪)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무엇인가?
24. 죄의 형벌은 무엇인가?
25.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라.
26. 구약과 신약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라.
27. 모세의 율법의 3가지 내용은 무엇인가?
28. 도덕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29. 구약이 은혜 언약인 증거는 무엇인가?
30.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독특성은 무엇인가?
31. 예수 그리스도의 3직(三職)은 무엇인가?
32. 속죄(贖罪)의 성경적 의미들은 무엇인가?
33. 속죄는 어떤 성격들을 가지는가?
34. 제한속죄(制限贖罪)의 근거는 무엇인가?
35. 중생(重生)의 의미와 증거를 간략히 서술하라.
36. 칭의(稱義)의 의미와 방법을 간략히 서술하라.
37. 성화(聖化)의 의미와 방법을 간략히 서술하라.
38. 성도의 견인(堅忍)에 대한 증거들을 들라.
39. 칼빈주의의 5대 교리란 무엇인가?
40. 교회는 어떤 속성들을 가지는가?
41. 교회는 어떤 성격에서 하나이어야 하는가?
42.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
43. 교회의 3가지 권위들이란 무엇인가?
44. 교회의 3가지 임무들이란 무엇인가?
45. 사회 정치 활동는 왜 교회의 사명이나 임무가 아닌가?
46. 역사상 나타난 3종류의 교회 정치 형태는 무엇인가?
47. 교회 직원들의 자격 요건은 한 마디로 무엇인가?
48. 여자 목사나 여자 장로가 성경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49. 은혜의 3가지 수단들이 무엇인가?
50.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
51. 침례(浸禮)에 대한 침례교회의 주장을 비평하라.
52. 유아 세례의 근거는 무엇인가?
53. 자유주의가 무엇이며 왜 잘못인가?
54. 교회 연합 운동이 무엇이며 왜 잘못인가?
55. 신복음주의는 무엇이며 왜 잘못인가?
56.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57. 성경은 신자가 어떤 자들로부터 분리하라고 가르치는가?
58. 성경적 분리의 이유들은 무엇인가?
59. 사람은 죽은 후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는가?
60.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인가?
61. 재림의 징조들은 무엇인가?
62. 환난 전 휴거설은 왜 잘못인가?
63. 천년왕국(千年王國)에 대한 4가지의 해석은 무엇인가?
64. 의인들과 악인들의 부활을 가르치는 성경구절을 들라.
65. 세상의 영원한 상태는 무엇인가?
출저:옛 신앙